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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이야기/알쓸별잡

[알쓸별잡]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그럴싸한데...?

by 별밤 에디터 3 2024. 4. 2.

오늘의 알쓸별잡의 주제는 멀고 멀고 머나먼 과거의 사람들이 주장한 가설과 그 가설들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천문학의 역사에서 가장 큰 일이라고 한다면, 몇 세기 동안 정설로 받아지던 천동설이 저물고 지동설이 인정받은 사건이 

있습니다.

 

천동설

천동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온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그렇다면 이 천동설은 어떠한 근거로 주장되었으며, 왜 받아들여지게 되었을까요?

17세기의 천체지도

 

우선,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많은 상식들을 한번 잊고 생각해 보죠. 

여러분은 태양이 중심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자전과 공전 등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가장 유명한 지식인이 이렇게 말하는 거죠.

자연은 , , , 공기 이렇게 4개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장 무거우며 그다음으로 물이 무겁다.
공기는 가볍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간다.
을 주워서 떨어뜨리면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가?
은 본질적으로 무겁기 때문에 세상의 중심으로 모인다는 증거다.
그렇기에 세상은 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위를 이 부분적으로 덮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흙으로 덮여 있는 이유가 흙이 가장 무거워서이며,
이 무거운 흙들이 모인 이 땅이 세상의 중심이다.

이 주장을 저희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듣는다면 정말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을까요?

 

이는 고대 그리스의 지식인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며 서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 철학을 정립한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였습니다.

이런 그의 주장은 그의 입지에 힘입어 굉장한 설득력을 가졌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천동설16세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의 과학자들이 지동설을 주장하기 전까지 당연한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원전 300년 전에 쓰인 글이 기원후 1500년대가 될 때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과 중세 유럽에 큰 영향력을 끼친 기독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과 이데아론

 

플라톤의 이야기를 한번 살펴보죠.

 

플라톤은 우리 세상 밖에 모든 사물의 본질인 이데아가 존재하며, 우리는 이데아의 그림자인 로고스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겉보기에 지나지 않는 로고스가 아닌 본질 그 자체인 이데아를 추구하며 공부해야한다고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진리를 좇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죠.

 

네? 천문학이랑 이데아론이 무슨 상관이냐고요?

 

플라톤은 천체를 관측하는 행위, 즉, 천문학은 로고스를 탐구하는 학문이라 생각했으며 별들의 복잡하고 불규칙해 보이는 운동은 그저 환영이자 착각 (=로고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다만 이 복잡함 뒤에 가려진 불변의 법칙성 (=이데아) 만이 우리가 배울 만한 것이라고 말했죠.

플라톤

 

쉽게 말해 플라톤은 관측을 통한 검증을 해야 하는 천문학은 불필요하다고 가르쳤고, 그에게 배운 아리스토텔리스 또한 이러한 사상을 갖게 된 것이죠.

 

플라톤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 다양한 저서에서 천상과 지상을 나누어 지상은 4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쉽게 변화하지만 천상은 에테르라고 하는 변하지 않는 원소로 이루어진 별들이 완전한 원운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독교의 아리스토텔레스 채택

 

기독교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이집트 신화를 흡수하여 그들의 신으로 덮어 씌었듯이 고대의 지식을 몇몇 채택하였습니다. 천상과 지상을 구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신과 인간을 구분해야하는 종교적 입장에서 그들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세계관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성과 더불어 그들의 교리와 부합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자연스럽게 종교적 교리와 하나가 되었고 기독교와 함께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음...여기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지만 천동설을 이야기하려니 빼두기 아쉬운 인물이 한 명 있네요.

바로 프톨레마이오스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천동설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지만 천동설을 과학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둘 다 그저 천동설을 지지한 사람들 아닌가? 라며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경우가 있습니다.

 

큰 틀로 보자면 틀린 구분은 아닐 수 있지만, 두 사람이 천문학을 연구한 성격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이 둘을 조금은 떼어놓고 봐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로, 이데아론을 직접 교육받으며 천체의 움직임보다는 그 뒤의 본질을 더 중요시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차이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조금은 달랐습니다. 그 또한 겉보기로 보이는 천체의 운동 뒤 불변하는 질서가 존재함원운동하는 천상의 움직임들을 중시하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이 현상들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고 천문학은 현실에서 관측되는 대상까지로 규정하였습니다. 더구나 그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적 천문학 외에도 바빌로니아의 관측적 천문학, 고대 그리스에서 발전한 기하학을 융합하여 천문학의 수학적 모델을 정립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두 사람은 같은 천동설을 믿었지만 이렇게 다른 성격을 띠며 천체를 바라보았을까요?

이 이유는 시간적, 지리적 환경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실 2024년의 우리 입장에서는 이 두사람이 모두 그냥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입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바라보면 저희의 입장과 비슷해집니다.

둘에게는 400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으니까요. 천문학을 그저 철학적으로만 바라보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시대가 아마 좀 더 개방적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가 살던 장소 또한 그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가 살던 장소는 바로 알렉산드리아였는데요.

알렉산드리아...어디서 들어보신 것 같지 않나요? 네, 알쓸별잡 첫 시간 등장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항구도시 특성상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였으 내륙보다 좀 더 개방된 사고가 가능했고, 더불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존재 덕분에 다양한 지식이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그리스와 알렉산드리아 인근의 지도

 

400년의 시간으로 조금은 희석된 천문학의 정의와 열린 사고가 가능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주변 환경은 천문학의 기원부터 있던 실용적 성격 (역법, 제사, 농사 등)을 위한 관찰을 통한 천문 현상 예측과 예지를 가능하게 하는 수학적 천문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실용적 과학을 시행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업적은 앞날의 과학자와 천문학자들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고대 그리스 최초이자 최대의 응용수학자로 평가받게 되었죠.

 

오늘은 이렇게 지금은 이상하게만 들리는 천동설의 기원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천동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지동설의 기원과 주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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